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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회학 공부

[오늘부터 사회학 공부] 한국의 사회학_2

by 엠벨118 2022. 6. 22.

한국사회학회 조직

 사회학의 새로운 방법과 이론이 미국에서 건너오기 시작하면서 1957년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필두로 해서 한국사회학회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대한민국의 사회학과는 경북대학교 사회학과와 서울 대학교 사회학과밖에 없었기 때문에 경북대 사회학과가 매우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한국사회학회는 결성된 이후에 1957년에 이화여자대학교에서, 1960년에는 고려대학교에서 사회학과가 개설되었다. 연세대학교에서는 바로 개설되지 못하고, 시간이 흘러 1972년이 돼서야 사회학과가 만들어졌다. 그 외에도 숭실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가 농촌사회학과를 개설하고 이어서 국민대학교에서도 사회학과가 개설되었지만 오래가지는 못하고 사라지게 되었다.

 

 한국사회학회가 결성되면서 대한민국의 사회학계는 점점 더 열기를 띠고 성장하기 시작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확실한 것은 경험적인 사회조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먼저 이만갑은 1956년에 도시에서 학교생활을 하고 있는 고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해서 학생들의 직업에 대한 태도를 조사했고, 뒤이어 1957년에는 이효재와 고황경이 주도하여 서울의 거주하고 있는 가족들을 조사했으며, 1958년에는 이효재, 고황경과 서울대 교수 2명이 힘을 모아서 전국의 농촌 가족들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1958년에 이만갑은 경기도의 6개의 촌락을 기준으로 하여 촌락사회의 형태를 확인하고 체크하는 조사를 시행하였으며, 1960년에는 독립신문의 논설을 대상으로 하여 논설에서 이야기하는 가치관을 내용 분석 기술을 가지고 탐구하였다.

 

 또 광복 이후 처음으로 미국에서 사회학 박사학위를 얻은 고려대학교의 홍승직이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직무에 가지고 있는 의식들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이어서 대한민국의 대학생들의 가치관부터 시작해서 사회의 다양한 계층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관을 조사하였다. 그 외에도 김경동은 학생들의 교과서를 연구하여 한국 사회의 유교적 가치관에 대하여 연구했고, 고영복은 한국인들의 의식구조에 대해 연구했고 도시에 사는 사람들의 사회적인 행동양식에 대한 연구를 시도했다. 가치관, 태도에 관한 연구 외에는 지역사회를 분석하고 조사했던 김일철의 「농촌개조에 있어서의 제문제」, 「농민집단의 소시오그램」, 「한국 농촌집단의 기능적 분석서론」 등이 논문이 1964년에 발표되었다.

 

 또한 지방에 위치한 농촌뿐만 아니라 수도권 도시에 대한 연구도 개시하여 이화여자대학교의 노창섭은 1963년과 1964년에 「서울주택지역의 연구」, 「신촌지역의 사회학적 고찰」, 「한국 도시지역사회의 연구」의 조사보고서를 계속해서 공개했으며, 경북대학교에서는 합동 연구의 결과로 「영세민 실태조사 보고서-대구 신암동 5구」를 발표했다. 그 밖에도 이효재는 가족에 관한 연구를 계속 진행했으며, 중앙대학교를 거쳐 고려대학교로 옮긴 최재석도 가족에 관한 연구를 집중적으로 진행해서 많은 논문들을 발표했다. 황성모는 독일에서 「한국농업노동의 사회학적 고찰」에 관한 연구를 진행했고, 김채윤, 이상백은 사회계층과 이동, 이해영은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안에 인구 조사연구소(이후에 인구 및 발전문제연구소로 명칭이 바뀜)를 창립하였고, 이천읍을 대상으로 한 가족계획에 대한 탐구를 포함해서 인구와 관련된 많은 연구를 시행했다. 이와같이 많은 사회조사가 시행되는 것에 비해 이론에 대한 탐구는 상대적으로 빈약한 편이었으며, 이론적인 논문으로는 경북대학교의 정철수의 논문 「파슨스의 행위론 고찰」과 경북대학교의 이순구가 집필한 논문  「막스 베버에 있어서의 방법적 제개념의 의미」가 있다.

 

 

자기 각성기 그리고 현재

 해외의 사회학을 가지고 들어와서 습득하기 가지 힘을 많이 기울이고 사회조사를 열심히 진행했던 시기를 지낸 뒤 한국사회학은 1964년부터 자기 각성기에 돌입하게 되었다. 이는 한국사회학이 해외의 사회학을 도입하는 종전의 태도에 반성하면서 대한민국 사회에 적용 가능하고 성장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과 이론을 마련하도록 열심을 내자는 자세에서 시작된 것이다. 이와 같은 움직임은 한국사화학회가 1963년에 있었던 추계대회에서 「한국사회학의 연구와 문제점」이라는 제목 아래 의견을 주고받은 심포지엄에서 처음으로 나타났다.

 이 시점부터 한국사화학회는 자주 자신들의 입장을 결의하는 주제를 내놓고 공동으로 참여하는 토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이후 한국사회학은 빠른 속도로 성장하게 되었다. 그 해에 경북대학교 사회학과를 창립한 배용광은 한국사회학회가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한국사회학회의 이사로 참가하였고, 한국사회학회의 초창기 모든 일정에서 사회를 맡았을 만큼 열심히 참여한 배용광 회장의 노력에 의해서 『한국사회학』이라는 잡지를 처음으로 발행하게 되었으며, 이때부터 연구의 양이 많아지고 질이 향상되었다.

 


한국사회학회

 한국사회학회는 1956년 가을에 개최된 준비회를 거친 뒤 1957년 5월 창립을 위한 총회를 개최하고 이상백을 한국사회학회의 초대 회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리고 가을에 학술논문 발표회를 열기로 작정하였다. 그때부터 매년 가을마다 연구발표대회를 개최하고 이어서 사회학회 총회를 개최하였는데 1965년부터는 가을뿐만 아니라 봄에도 연구발표회를 열게 되었다. 그리고 1972년부터는 월례발표회를 개최하기 시작했다. 초창기의 연구발표회에서는 회원들이 개별적으로 자신들의 논문만 발표하였지만 1963년부터 학회로서의 입장과 방향을 밝히는 하나의 방안으로서 주제를 가지고 심포지엄이나 그 외의 공동 토의를 진행하는 일이 자주 있었다. 이러한 방법들로 토의에서  이야기되었던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한국사회학의 이론과 방법을 성장시키는 일이지만 또 하나의 문제는 인접사회학과의 이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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