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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부터 사회학 공부

니체_3 니체의 사상_1(퇴폐성 비판, 일원론, 신의 죽음, 위버멘쉬)

by 엠벨118 2022. 7. 14.

니체의 사상

 

퇴폐성 비판

 니체는 우리 세계에 적용되어 있는 도덕적 세계관이 인간의 삶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음과 같은 니체의 글에 그의 사상이 나타난다.

 

“마누, 플라톤, 공자, 유대교 교사들과 기독교 교사들, 이들은 거짓을 지껄이면서도 그것이 자신의 권리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우상과 황혼> 中

 

“모든 시대의 현자들은 삶에 대해 같은 결론을 내렸다. 삶이란 의미 없는 것이라고 말이다”
<우상과 황혼> 中

 니체는 불교와 기독교를 포함한 이전부터 지금까지 존재하는 모든 도덕적 사상들은 데카당(decadent), 즉 퇴폐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이야기하고 비판한다.

 

 또 플라톤을 탐구했던 니체는 그의 저서 <신약의 저편>의 서문에서 기독교는 대중을 위한 플라톤 사상에 불과하다는 평가를 내리기도 했다.

 

 

일원론(생기 존재론)

 니체의 일원론은 권력의지를 기본으로 삼고 있는데 근대 철학의 이원론과는 서로 반대되며 주체와 대상으로 나누어지는 데카르트의 이원론에서 벗어났다. 니체는 진리라는 것은 실존하지 않는다고 말하며 오직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힘만이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니체는 천국과 같은 이상 세계는 인간이 만들어낸 허상에 불과하며 오직 눈 앞에 펼쳐진 현상 세계만이 실존하고, 결과는 없고 오로지 과정으로만 남아 있다고 이야기한다. 니체는 이성의 철학, 실체의 철학, 정적인 철학, 계몽의 철학이 아닌 반이성의 철학, 관계의 철학, 동적인 철학, 허무의 철학을 주장했다.

 

신은 죽었다

 니체가 이야기하는 신의 죽음이란, 즉 인간이 만들어낸 최고가치를 잃어버렸다는 것을 의미한다. ‘신의 죽음이란, 이상주의나 종교 등의 신앙이 유실된 상태를 가리키는 말이다. 다르게 말하자면, ‘신의 죽음이란 허무주의가 도래했음을 가리키는 표현이기도 하다. 인간이 믿어왔던 최고가치가 상실되고 허무주의가 출현함과 동시에 다음과 같은 질문이 생겨난다.

 

“삶의 최고가치가 상실된 상태에서 개인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니체는 그의 저서 <안티크리스트>에서 불교와 기독교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점검한다. <안티크리스트>에서 니체는 불교에 대해서는 좋은 평가를 내리지만 곧바로 기독교와 불교, 두 개의 종교를 데카당(decadent), 즉 퇴폐적인 종교로 정의한다. 니체는 불교는 세상살이에 지쳐있는 노인들을 위한 종교라고 말했고, 기독교는 도덕에서 일어나는 노예의 반란이라고 말하며, 그의 저서 <도덕의 계보>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무력한 자, 가난한 자, 비천한 자만이 오직 착한 자다. 궁핍한 자, 고통받는 자, 추한 자, 병든 자만이 유일하게 경건한 자이고 신에 귀의한 자이고, 오직 그들에게만 축복이 있다고 말하며 사악하고 잔인하고 음란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은 영원히 축복받지 못하고, 저주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이러한 유대의 가치 전환의 유산을 누가 상속했는지 우리는 알고 있다. 즉 유대인과 더불어 도덕에서의 노예 반란이 시작된다.”

 

 니체는 <신약의 저편>에서 자신을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라고 이야기한다.

 

“나는 디오니소스 신의 마지막 제자이자 정통한 자이다. 나는 기어이 한 번쯤 내 친구인 그대들에게, 나에게 허락하는 한, 이 철학을 조금은 맛보게 하는 일을 시작해도 좋을 것이 아닌가?”
<신약의 저편> 中

 

 니체는 디오니소스그리스 비극에 대한 상징적 표현으로 사용하고 있다. 진화론에 대한 니체 자신의 견해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니체는 성장이라는 표현을 좋아했는데, 이는 그리스 비극 정신에 대한 그의 견해에서도 나타난다. 니체에게 있어서 그리스 비극 정신이란, 니힐리즘(nihilism), 즉 허무주의를 뿌리로 해서 고통을 힘에의 의지로 탈바꿈하고자 하는 태도이다.

 

 니체는 자신을 벗어나는 도덕을 초월하는 인간에 대하여 생각하고 있었다. 이를 위버멘쉬(Übermensch), 즉 초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위버멘쉬는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안일한 인간을 초월하는 인간의 유형을 말한다. 이렇게 보면 위버멘쉬는 과거부터 지금까지의 속()과 성()을 초월하는 인간이다.

 

위버멘쉬(Übermensch)

 위버멘쉬를 어원적으로 보자면 뛰어넘는(Über) 인간(mensch)을 의미한다. 즉 극복하는 인간이자, 극복함으로 인해 창조하는 인간을 의미한다.

 

“새겨두어라 형제들이여. 평가하는 것이야말로 창조하는 것이다.”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中

 

“세계가 생겨난 이래로 지금껏, 스스로에 대한 비평을 허용하는 권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아침놀> 서문 中

 

 위버멘쉬는 근대적인 도덕 및 신앙과 가치를 초월하는 인간을 뜻한다. 그 이유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규범들은 니체가 시선에서는 인간에게 이롭지 못한 것들이었기 때문이다. 위버멘쉬는 도덕적인 관점으로 볼 때, 자신을 부정하라고 말하는 도덕을 초월하고 뛰어넘은 인간이다. 예를 들면, 순교자나 극기복례와 같은 것들에서 벗어나고, 자유해진 인간을 말하며, 그로 인해 창조하는 인간을 말한다. 이 개념은 기존의 풍습 도덕과는 서로 대치되며, 현실에 만족하는 인간, 권력에 물들어 버린 인간을 가리키는 인간말종(Der letzte Mensch)'과도 반대되는 개념이다.

 

“이 원숭이들을 보라. 이들은 권력을 원하고, 무엇보다 권력의 지렛대인 돈을 원한다. 이들 모두는 높은 권력을 원한다. 그러나 권좌 위에는 똥이 있는데….”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새로운 우상에 대하여' 中

 

 위버멘쉬는 신적인 힘과 초월적인 힘을 가지고 있는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부터 지금까지 이어져 온 자신을 부정하라고 말하는 도덕적 가치에서 벗어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인간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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