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에 대하여
독일의 철학자이자 문헌학자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는 ‘망치를 든 철학자’라는 별명으로 유명하다. 그 이유는 기독교 가치관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서구의 전통을 깨부수고 새로운 가치를 세우려고 노력했기 때문이다. 니체는 그리스도교의 도덕과 합리주의의 시작을 밝혀내려고 열심히 탐구했고, 이성적인 것들의 실제는 광기와 비이성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기독교와 관념론은 세계를 두 개로 나뉘어 설명한다. 예를 들면 기독교는 우리가 사는 이 땅 외에 천국이 있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플라톤은 세계를 이데아계와 현상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하지만 니체는 이러한 구분을 인정하지 않고 ‘이 땅에서의 삶을 사랑할 것’을 강하게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현실의 삶을 인정하지 않고 비방하는 사람들을 퇴락한 인간이라고 이야기했다.
니체는 ‘절대적 가치’나 ‘영원한 세계’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러한 부분에서 니체는 관념론적 형이상학과는 반대의 입장에 서 있다. 또한 예수의 가르침과는 다르게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간다는 교리만을 전하는 기독교를 비판했다.
니체는 국가주의, 민족주의, 반유대주의, 전체주의 등을 비판하는 입장이었다. 하지만 파시스트들은 그의 사상을 왜곡해서 받아들였다.
앞으로 몇차례에 걸쳐서 망치를 든 철학자 니체에 대해서 알아보려 한다.
출생
니체는 1844년 10월 15일 지금의 독일인 프로이센의 작센의 작은 마을인 뢰켄(Röcken)에서 루터교의 목사 가정의 아들로 태어나게 되었다. 니체의 이름은 프로이센의 왕인 프리드리히 빌헬름 4세에게서 따왔는데, 빌헬름 4세는 니체가 세상에 나오던 날에 이미 나이가 49세가 넘은 중년이었다. 여담이지만 나중에 니체는 자신의 이름 가운데의 ‘빌헬름’을 빼고 프리드리히 니체로 살았다.
니체의 아버지 카를 빌헬름 루트비히 니체(1813~1849)는 전직 교사이자 루터교회의 목사였고, 니체의 어머니인 프란치스카 욀러(1826~1897)와 1843년에 결혼을 하게 되었다. 니체의 여동생 엘리자베스는 1946년에, 그 후 니체의 남동생 루트비히 요셉은 1848년에 태어났다. 그다음 해인 1849년, 니체의 아버지는 뇌 질환으로 숨을 거두고, 또 바로 다음 해 1850년, 니체의 어린 남동생이 죽는다. 이후에 니체의 가족은 나움부르크로 거처를 옮기게 되었고, 니체의 할머니와 어머니 프란치스카, 그리고 아직 미혼인 두 고모와 두 하녀와 함께 지내며 유년 시절을 보냈다.
학업
니체는 1851년 소년학교에 다녔고 다음에는 사립학교에 다녔다. 그 사립학교에서 니체는 빌헬름 핀터와 구스타브 크루크와 친구가 되었다. 이 두 친구는 모두 이름 있는 가문의 자제였다. 1854년에 니체는 나움부르크의 돔 김나지움에 다니기 시작했다. 돔 김나지움은 우리나라로 치면 중학교에 해당하는 학교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니체의 특별한 재능은 언어와 음악에서 서서히 발휘되기 시작했다. 이후에 니체는 국제적으로 유명한 기숙학교 슐포르타에 입학했고, 1858년부터 1864년까지 슐포르타에서 학업을 이어나갔다. 슐포르타에서 니체는 칼 폰 게르도르프와 파울 도이쎈과 친구가 되었고, 음악을 작곡하고, 시를 쓰는데 많은 시간을 들였다. 또 로마와 고대 그리스에 대한 공부도 열심히 했다. 기숙학교 생활을 하면서 니체는 생애 처음으로 작은 시골에서의 기독교적 환경과 가족들과의 삶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1864년 슐포르타를 졸업한 이후에 니체는 본 대학에서 고대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슐포르타에서 사귄 친구인 파울 도이쎈과 대학생 학우회(Burschenschaft Frankonia)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한 학기가 지난 후에 니체는 어머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신학 공부하는 것을 멈추었고, 급기야 신앙을 저버렸다. 니체가 신앙을 저버린 이유는 아마도 헤겔의 제자였던 다비드 슈트라우스가 집필한 <예수의 생애>(Das Leben Jesus)라는 책 때문이었을 것이다. <예수의 생애는> 예수의 전승이 신화적으로 변형되었다고 주장하는 내용을 담은 책이었다. 이 책의 내용이 젊은 니체에게 큰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철학 공부와 군 복무
니체는 1865년에 쇼펜하우어의 글들을 접하게 되었고, 1866년에는 프리드리히 알베르트 랑게의 저서, <유물론의 역사와 그 현재적 의미에 대한 비판>(Geschichte des Materialismus und Kritik seiner Bedeutung in der Gegenwart)을 읽었다. 쇼펜하우어와 랑게의 글들은 니체가 그의 관심을 철학을 뛰어넘는 영역까지 이르게 만들었고, 니체가 학업을 계속 이어나가게 하는 이유가 되었다.
1867년에 10월에 니체는 군에 자원하여 입대했다. 니체는 군 복무를 하는 것과 철학을 공부하는 것을 두고 고민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어떤 시집을 읽는 꿈을 꾸었다. 니체는 그 꿈을 전쟁과 투쟁은 잊어버리고 공부하는 것에 전심을 다 하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철학을 공부하는 것에 열정을 쏟게 된다. 니체는 나움부르크에서 프로이센군의 포병으로 1년간 복무했다. 하지만 1868년 3월경에 말을 타던 중 사고가 일어났고, 니체는 가슴을 크게 다쳐서 후송되었고, 군 복무를 이어나가기 어려웠다.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사고로 병가를 받은 니체는 다시 학업에 열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는 프리드리히 빌헬름 리츨 교수 아래에서 철학 공부에 매진했고, 1868년 10월에는 리츨 교수를 따라서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옮겨가게 되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니체는 새로운 친구인 에르빈 로데를 사귀었다. 그리고 이 시기에 니체의 첫 철학 저서가 출판을 앞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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